이사란 시대를 불문하고 늘 설레면서도 고단한 큰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달리, 조선시대의 이사는 이삿짐 센터도 없고, 트럭도 없는 그야말로 손품과 발품으로 옮기는 대규모 행사였어요.
특히 주부들의 살림살이 꾸러미 속에는 어떤 물건이 가장 중요했을까요?
놀랍게도 그 답은 솥입니다!
솥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조선시대 이사 문화, 그 뒷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까요?
1.솥부터 챙겨라! 조선 주부들의 이삿짐 1순위
조선시대 이사 풍경을 떠올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건 집안 살림살이의 종류보다도 솥입니다.
왜 하필 솥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1순위였을까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솥은 단순한 주방 도구가 아닌, 가족의 생계와 직결된 생명선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탕국을 끓이고, 약을 다리고, 손님을 맞이할 때 큰 솥으로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이사 당일, 새 집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솥을 걸고 밥을 짓는 것이었어요.
심지어 이삿짐을 옮기는 순서도 솥을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새 집에 들어가는 첫 물건이 솥이라야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고, 이삿날 밥을 새 솥에서 지어 가족이 함께 먹어야 그 집에서 오래도록 무탈하게 살 수 있다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솥은 주부의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새 집에서도 솥을 중심으로 부엌살림을 다시 배치하고, 가장 먼저 불을 지펴 따뜻한 밥 냄새를 풍기는 일이 새살림 시작의 신호였지요.
2.이사도 의식이다! 조선시대 고사와 자리 잡기 풍습
조선시대 이사는 단순히 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특히 새 집으로 들어가기 전과 후에는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사는 이삿짐을 풀기 전, 새 집에 머물던 터주신(터를 지키는 신)께 인사를 드리는 풍습입니다.
보통 쌀밥, 나물, 탕국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며 우리 가족 무탈하게 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비는 것이죠.
이때도 솥에서 지은 첫 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 밥은 보통 한 숟갈씩 가족 모두가 나누어 먹으며, 새 보금자리에서 첫날을 맞이했어요.
또한, 집안 살림을 새로 배치할 때 주부들은 장독대와 부뚜막 자리를 신중히 골랐습니다.
장독대는 발효식품의 보관을 책임졌고, 부뚜막은 가족의 밥상을 책임졌기 때문에 두 장소 모두 햇볕과 바람을 고려해 위치를 정했습니다.
특히 이 두 공간은 주부의 손때가 많이 묻는 곳이라, 이사 초기에는 가족 모두가 정성껏 청소를 도왔습니다.
이렇게 새 집에서 첫 불을 지피고, 첫 밥을 지어 먹는 과정을 통해 집안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던 것이지요.
3.새집 적응을 위한 주부들의 이사 후 살림 정리법
이사가 끝나면 주부들은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안 물건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리정돈을 하는 것이었어요.
조선시대 주부들은 이삿짐을 풀 때, 몇 가지 나름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우선 주방살림부터 자리를 잡고, 솥, 가마솥, 그릇, 장독을 모두 닦고 소독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조선시대엔 소금물이나 막걸리 찌꺼기로 그릇을 닦는 일이 많았습니다.
새 집의 물맛과 환경에 맞춰 밥 짓기 실험도 해보고, 쌀 씻는 물을 바꾸어가며 솥의 상태를 확인했지요.
그다음에는 가족의 침구와 의복을 챙겨 방마다 비치했습니다.
조선 주부들은 겨울엔 솜이불을 햇볕에 말리고, 여름엔 모시 이불을 새로 다려서 새 집에 깔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정원의 장독대 주변을 돌며 집안의 식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담근 장과 된장의 위치도 최적의 장소로 옮겼습니다.
이런 살림 정리 과정은 새로운 환경에 몸과 마음을 맞추는 의식이자, 가족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주부들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새집은, 이사한 당일과는 또 다른 온기를 품고 가족을 맞이했죠.
맺음말
조선시대 이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살림살이와 가족의 안녕을 새로 정돈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솥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사 문화는 조선 주부들의 지혜와 살림의 중심을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입니다.
지금은 손쉽게 이삿짐 센터에 맡기고 간단히 정리하는 일이지만, 조선시대 주부들은 두 손으로 부지런히 집을 옮기고, 새 집을 살림의 품으로 만들었어요.
이사를 하며 솥에 첫 밥을 지어 먹던 전통은 어쩌면 가족이 모여 함께 한 끼를 나누는 순간이 가장 큰 행복임을 말해주는 조선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