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주부의 손글씨 붓으로 쓴 장보기 메모와 살림 일지
지금처럼 스마트폰 메모장이나 볼펜으로 적는 장보기 메모는 조선 시대에 없었습니다.
대신 조선 주부들은 붓과 종이, 때로는 흙벽에 손가락으로 메모하듯 그날그날 필요한 식자재를 기록해 두곤 했어요.
붓글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마음가짐을 그대로 드러내는 도구였죠.
1.장보기도 손글씨로! 붓으로 쓰는 조선 주부의 쇼핑 리스트
장보기가 필요한 날이 되면, 주부들은 가족 구성원의 입맛과 계절을 생각하며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콩 2되, 고추장 한 되, 말린 나물, 멸치 몇 근이런 식으로 식재료 목록을 붓으로 정성껏 적었습니다.
종종 장바구니를 맡아 장에 나가는 집안의 머슴이나 어린 자녀를 위해 글씨를 또박또박 쓰거나, 그림을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서민가에서는 쌀, 콩, 장류와 같은 주곡이나 기본 조미료는 장터에서 사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이러한 메모는 살림의 기본이었습니다.
장터까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한 번 장을 볼 때 여러 품목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걸 도와주는 것이 바로 손수 쓴 장보기 메모였어요.
이 메모는 비단 물건을 사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주부의 살림살이에 대한 책임감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살림의 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종이에 적은 메모를 작은 손수건처럼 접어 품에 넣고 다니거나, 심지어 흙벽에 대충 적어두었다가 장보러 가기 전 보고 외우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의 생활 속에는 이처럼 붓과 종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고, 메모하는 행위 자체가 살림의 첫걸음이었죠.
이런 일상의 작은 손글씨 기록이 쌓여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살림의 기본을 다졌습니다.
2. 일상의 기록, 살림 일지 - 조선 주부의 손글씨로 남긴 가계부
조선 시대 주부들은 단순한 살림꾼이 아니라,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계 관리자였습니다. 그래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간단한 살림 일지가 존재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가계부입니다.
붓과 한지, 그리고 정성스런 손글씨로 기록된 이 살림 일지는, 조선 주부들의 꼼꼼함과 경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화폐 경제가 점차 확대되며 시장 거래가 활발해졌고, 이에 따라 주부들은 집안 살림을 계획적으로 꾸려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쌀 두 가마니를 장터에 팔고 돌아왔을 때, 그 쌀값을 정확히 메모하고, 그 돈으로 산 물건 목록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계절마다 드는 의복비, 제사 비용, 손님 접대비, 장작과 숯 값, 약초 구매비용까지도 적었습니다.
이런 기록은 단순한 돈 계산을 넘어, 주부의 자존심과 가족을 위한 책임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주부들은 손글씨로 적은 이 살림 일지를 통해 물건의 값 변동, 장터 물가, 심지어 장날에 따른 경향까지 읽고 예산을 짰습니다. 때로는 일지 한편에 오늘은 시장이 북적였고, 두부 값이 예년보다 10전이 올랐다 같은 짤막한 소감이나 감상도 남기곤 했죠.
손글씨로 기록된 일지는 다음 세대에도 물려줄 만큼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마을의 며느리가 새로 시집올 때, 선배 주부가 자신의 살림 일지를 보여주며 생활 지혜를 전수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기록은 조선 주부들의 살림을 지키는 보물창고였고, 손글씨는 그 마음을 담는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3. 생활과 글씨의 경계가 흐릿했던 시대 - 붓으로 남긴 일상의 흔적들
조선 시대 주부들에게 손글씨는 단순한 기록 수단을 넘어서, 생활의 일부이자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붓을 들고 한지를 펴면 그날의 날씨, 가족의 건강, 장보기 품목, 마음속의 다짐까지 모두 적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붓글씨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생활을 정리하는 의식처럼 여겨졌어요.
예를 들어 아침밥을 지은 뒤, 장독대에서 간장과 된장의 양을 확인하며 필요한 양을 메모하거나, 김장을 앞두고 소금과 무, 배추의 양을 정리하는 것도 손글씨로 이루어졌습니다.
장날을 준비하는 메모뿐 아니라, 아이들 이 닦이는 횟수, 남편의 술 안주 마련, 다음 달 시댁 제사 준비같은 일상의 계획표도 붓으로 작성했습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글씨를 쓰는 습관은, 주부들의 사고방식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붓을 들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쓰는 시간은, 그들에게 휴식이자 명상의 순간이었죠.
글씨를 쓰며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어제를 돌아보는 시간은 살림과 인생을 곱씹는 특별한 의식이었습니다.
조선의 주부들은 무심코 남긴 손글씨를 통해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 그리고 생활의 지혜를 후손에게 전했습니다.
오늘날 스마트폰 메모처럼 손쉽지 않았던 붓글씨 메모가, 오히려 생활을 더 성찰하고 꼼꼼히 챙기게 만든 비결이었을지 모릅니다. 조선 주부들의 손글씨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살아 있는 기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