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줄이기 실험을 시작한 첫날 아침, 딸에게 이번 주에는 단 걸 줄여보자고 말했을 때,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엄마, 그럼 간식은 뭐 먹어? 하루에도 몇 번씩 요구르트, 초코과자, 사탕을 찾는 8살에게 ‘설탕 줄이기’는 마치 놀이를 그만두라는 말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반응이 격렬했다. 그럼 심심할 때 뭐 먹어? 나 배고픈데! 라며 소파에 누워 발을 동동 구르던 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전 회의’를 열었다. 엄마와 딸이 머리를 맞대고, 이번 주에 먹을 수 있는 ‘건강 간식 리스트’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사과, 방울토마토, 고구마스틱, 아몬드, 무가당 요거트, 오이와 당근스틱까지, 이름만 적어놓으니 딸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직접 장을 보러 가서 장바구니에 간식을 고르게 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무설탕’ 표시가 붙은 말린 망고와 아몬드볼은 딸이 스스로 고른 첫 건강 간식이었다.
1.엄마 그럼 간식은 뭐 먹어? - 도천 첫날의 작전회의
우리는 하루 세 번의 간식 타임을 정하고, 그 시간 외에는 먹지 않는 약속도 세웠다. 아이가 직접 종이에 시간표를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며 이건 간식 시간!이라고 표시했을 땐 왠지 모르게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놀이처럼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주도성을 심어주려는 우리의 작전이 숨어 있었다.
도전 첫날, 딸은 매 시간마다 간식을 찾았고, 사탕이 먹고 싶다고 짜증도 부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루가 지나자 “내가 정한 시간이니까, 지금은 기다려야지”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이는 자율성을 줄 때 더 강하게 움직인다. 단 걸 좋아하는 아이가 설탕 없이 일주일을 보낸다는 건 분명 도전이었지만, 이 작전 회의는 앞으로의 일주일을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사탕 대신 사과? 진짜 입맛은 바뀌는 걸까?
둘째 날부터는 간식 전쟁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래도 입에 단 게 그리운 딸은 사탕 대신 사과를 받아들긴 했지만, 한입 베어문 뒤 맛은 있는데, 뭔가 아쉬워라는 말을 곧잘 했다. 사과, 방울토마토, 바나나는 자연당이 풍부하지만, 평소 인공적인 단맛에 익숙해진 딸에겐 처음엔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 간식 맛있게 먹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사과는 무조건 얇게 썰어 예쁜 접시에 담았고, 방울토마토는 꼬치에 꽂아 꽃 모양을 만들었다. 무가당 요거트엔 직접 썬 과일을 넣어 요거트볼을 만들었고, 당근스틱은 땅콩버터(무가당)에 살짝 찍어 먹게 했다. 먹는 방식 하나 바꿨을 뿐인데, 아이의 반응이 달라졌다. 우와, 이거 카페 간식 같아!라며 눈을 반짝이는 순간이 바로 그 증거였다.
셋째 날에는 ‘간식 만들기 놀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찐 고구마를 으깨서 아몬드 가루와 섞어 주먹밥처럼 빚었고, 병아리콩은 삶아서 살짝 소금만 뿌려 구웠다. 딸은 “이건 엄청 맛있는데?라며 자신이 만든 간식을 자랑스럽게 아빠에게 내밀었다. 맛도 중요했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아이를 더 만족스럽게 만든 듯했다.
입맛이 정말 바뀔까? 라는 질문에는 ‘예’라고 말하고 싶다. 실험 4일째 되던 날, 딸은 갑자기 말없이 사과를 꺼내 먹었다. “왜 사과 먹었어?”라는 질문에 그냥,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을 때 나는 속으로 조용히 박수를 쳤다.
단맛의 기준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인공적인 단맛은 처음엔 자극적으로 끌리지만, 오히려 자주 먹을수록 더 강한 단맛을 찾게 된다. 반면 자연스러운 단맛은 시간이 지나면 더 깊이 있게 느껴지고, 심지어 섬세한 맛의 차이도 구분하게 된다.
일주일은 짧지만, 아이의 입맛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사탕 없이 지낸 4일, 딸은 과일의 단맛을 새롭게 느끼기 시작했고, 식사 중에도 “이거 달콤해!”라고 말하며 오이무침의 단맛도 알아차렸다. 입맛은 학습된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날 수가 없었다.
2.엄마, 너무 힘들어” – 딸의 좌절, 그럼에도 버틴 이유
설탕 없이 보내는 일주일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딸의 표정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초코과자와 사탕이 주로 간식이었고, 그동안 달콤한 음료를 자주 마셨던 딸에게 설탕 없이 지내는 것은 힘든 도전이었다. 처음엔 간식 시간이 되면 좋아하는 과자 대신 과일과 고구마, 요거트를 제시했을 때 조금씩은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딸은 그런 간식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딸이 가장 힘들어한 순간은 저녁 식사 후였다. "엄마, 이제 정말 사탕이 먹고 싶어"라며, 잠깐이나마 사탕 한 개를 먹고 싶다는 눈치를 주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이건 우리가 약속한 거잖아. 잠깐만 참자, 곧 내일이야”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딸은 갈수록 지쳐갔다. 사탕 없이 지내는 것이 예상보다 더 큰 시련이었고,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불만이 쌓였다.
간식을 요구할 때, “오늘은 과일 먹자”라고 했을 때는 그저 대답 없이 흘려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입에서 나온 아무것도 안 먹을래라는 말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정말 큰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계속해서 이를 악물고 버틴 이유가 있었다.바로 ‘성취감’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 도전을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 것 같았다. 사탕이 생각날 때마다 내일은 사탕 먹을 거야라고 말하며, 그날 하루의 목표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딸에게 설탕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단순히 간식만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끈기’와 ‘자기 조절’을 배우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결국 사탕은 조금만 참으면 내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자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작은 변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주말이 다가오면서 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엄마, 내일은 간식 시간에 무슨 과일 먹을까?라며 스스로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설탕을 줄이는 게 힘들지만, ‘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점차 자리 잡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니 딸은 자신감을 얻었고, 앞으로의 ‘자기 조절’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설탕 없이 살아낸 일주일, 우리 가족이 느낀 변화와 깨달음
설탕 줄이기 실험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모두 각자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았다. 딸은 처음엔 힘들었지만, 끝까지 도전하며 다양한 간식 대체품을 시도했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딸의 입에서는 사탕은 이제 안 먹어도 괜찮겠어라는 말이 나왔고, 이 말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단순히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가 과자를 줄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의지했던 단맛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고, 과일과 자연적인 당분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남편도 예상외로 설탕 줄이기 실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처음엔 미리 준비한 음식들이 너무 밋밋하고, 입맛이 없을 거라고 걱정했지만, 이제는 블랙커피를 마시는 게 오히려 더 좋다고 말했다. 맛이 단순해도 진짜 내 몸이 원하는 맛은 이런 거였나 봐라고 말하며, 설탕 없이 먹은 일주일이 오히려 몸에 더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평소에는 꼭 설탕이 들어간 음료나 디저트를 찾던 남편이, 오히려 건강한 식사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며 나는 놀랐다.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설탕이 우리 생활 속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빵, 소스, 음료, 심지어 일부 반찬에도 숨어있는 설탕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그동안 무심코 먹었던 것들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완전히 설탕을 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필요하지 않은 당분을 줄이고, 더 건강한 선택을 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나도 남편처럼, 아침 커피 한 잔이 더 이상 설탕 덩어리가 아니라 진짜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우리는 단지 설탕을 줄이는 것 이상의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바로 ‘몸에 좋은 음식을 고르는 습관’이다. 단 것을 줄이자 음식의 맛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고, 평소에는 놓쳤던 건강한 대체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습관을 바꾸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우리 가족은 이번 실험을 통해 단순히 설탕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생활 패턴을 다시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분을 줄이기 위한 도전은 끝났지만, 건강한 식습관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이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